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하 유흥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신 20대 남성 손님과 30대 여성 종업원이 잇따라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치사량 이상의 필로폰을 투여(投與)한 게 두 사람의 사망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8일 확인됐다. 특히 이 손님은 필로폰 유통 중간책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당시 술과 필로폰에 취한 상태로 술에 필로폰을 타는 과정에서 적정량을 넘겨 약을 복용하는 바람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5시쯤 필로폰 중간 유통책으로 추정되는 20대 A씨는 사망한 종업원 B씨 등 6명과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수개월간 필로폰을 투약해 온 것으로 보이는 A씨는 이날 술을 마시기 전에도 필로폰을 한 차례 투여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통책들은 일반적으로 판매 및 투여를 위해 1회 적정량으로 알려진 0.03g씩 필로폰을 미리 분배해 별도 봉투 등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술과 필로폰에 취한 상태였던 A씨는 필로폰이 가득 든 봉지를 꺼내 그 안에 손가락을 넣어 가루를 집은 뒤 자신의 술잔 등에 섞었다. A씨와 여종업원은 그 술을 마셨고 몇 시간 뒤 숨졌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적정량을 맞추지 않는 바람에 두 사람이 숨졌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당시 함께 있던 여성 동석자에게 “A씨가 술잔에 흰색 가루를 타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실제 숨진 A씨 차량에서 2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인 필로폰 64g이 든 봉투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소지 혹은 유통하던 마약에 대한 거래내역 등을 파악 중이다.지난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이 같은 마약 관련 사건이 급격히 늘고 있어 경찰 내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대마를 흡입한 20대 여성이 차로 가운데로 뛰어다니며 통행을 방해해 경찰에 붙잡혔고, 5월에는 서울 구로구 한 공원에서 필로폰에 취한 한 40대 남성이 또 다른 남성을 돌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벌어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마약 범죄로 입건된 사람은 월평균 635명이었지만 거리 두기가 풀린 4월엔 그 수가 926명으로 증가했고, 5월엔 1867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올해 필로폰을 비롯한 마약 거래 가격이 작년에 비해 3~4배 이상 올랐다”며 “단속으로 공급은 줄어드는데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사건의 70%가 초범인 만큼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약물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텔레그램 등 추적이 어려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마약이 증가한 탓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미크론이 확산하면서 동남아 등에서 마약 생산이 주춤했지만 점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몇 달 전부터 생산량이 회복됐다”며 “해외 유입 마약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국내 마약 사건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교수는 “거리 두기 해제 후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처럼, 거리 두기 동안 위축됐던 마약 영업도 급격하게 활성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